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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9교구 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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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35

1, Donghwasa 1-gil, Dong-gu, Daegu

전통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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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는 493년에 극달이 창건하여 유가사라 하였다. 그 뒤 832년(신라 흥덕왕 7년)에 왕사 심지가 중창하였는데, 그때가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 유사>에는 진표율사에게서 영심에게 전하였던 불간자(佛簡子)를 심지가 다시 받은 뒤, 팔공산에 와서 불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이룩하니 곧 동화사 첨당 북쪽의 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신라 제41대 흥덕왕의 셋째아들로 태어난 심지는 중악에서 수도하던 중, 속리산 길상사에서 영심이 그의 스승 진표에게서 계법을 전해받고 점찰법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나 때가 늦어 당에 올라가서 참례할 수 없 었으므로 땅에 엎드려서 참례하였다. 법회 7일 만에 진눈깨비가 심하게 내렸는데 심지의 둘레 10자에는 눈이내리지 않았으므로 모두들 신기하게 여겨 당으로 안내하였다. 그곳에서 심지는 열심히 수도하여 영심에게 법통을 계승하는 간자를 받았다. 그 뒤 팔공산으로 돌아와 산꼭대기에서 간자를 날려 떨어진 곳에 절을 짓고 간자를 모셔 동화사의 개조(開祖)가 되었다고 한다. 극달의 창건연대인 493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시기이 므로 공인되기 전에 법상종의 성격을 띤 유가사라는 사명이 붙여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움으로 심지의 중창을 실질적인 창건으로 보는 것이 보통의 견해이다.

창건 뒤 863년(신라 경문왕3년) 경문왕이 비로암 3층 석탑과 석조비로자나불을 조성하였으며, 934년(경순왕 7년)에는 선사 영조가 절을 중창하였다. 고려에 들어서는 1036년(고려 정조 2년)영통사, 숭법사, 부인사 등과 함께 경.율을 시험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며, 1190년(고려 명종20)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였다. 1294년(충렬왕 20년)에는 국사 홍진이 절을 중건하였다. 1319년(충숙왕 6년)에는 현승이 통도사에서 부처님 진신사 리 5과를 얻어와 이를 봉안하고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65년(세조 10년) 금당을 중건하였으며, 1606년(선조 39년)에는 유정이 절을 중창하였고 이어 학인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유정은 영남도총섭으로 절에서 승군을 지휘했으며 사서원은 격문을 지어 많은 의병들을 모집, 절에서 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일대 55개의 사찰을 거느렸던 대본산이었으며, 현재는 대구광역시와 청도군, 칠곡 군, 성주군의 사암을 관장하고 있다. 근래 평화통일의 발원을 담은 약사여래불을 조성하였다.

성보문화재로는 보물 제243호 마애불좌상을 비롯하여, 보물 제244호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재247호 비로암 삼층석탑, 보물 제248호 금당암 삼층석탑 2기, 보물 제254호 당간지주, 보물 제601호 달성 도학동 석조부도 외에 다수의 시문화재자료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미륵보살이 진표에게 주었고 영심을 거쳐 심지에게 전해졌다는 패엽경이 전해지고 있고, 고려의 예종이 이 패엽경을 빌려 보다가 일부를 잃어버리자 송나라에서 전 해온 부처님 어금니 1개를 대신 보냈다는 불아, 당나라에서 만든 요령, 유정이 영남도총섭으로 있을 때 사용하였던 영남도총섭 안장 등이 있다.

또한 동화사의 종소리는 공산팔경의 하나로 꼽히며 약수암 앞 수숫골과 폭포골 사이에는 구세약수가 있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찬 약수는 간장병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 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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